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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극복에 관한 이야기

by 무루룽 2022.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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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결심했을 때, 다시 삶을 생각하는 우리

베로니카는 평범한, 아니 남들보다도 좀 더 괜찮은 조건을 가진 20대 여성이다. 그녀는 탄탄한 직업에 예쁜 외모,  풍족한 부모님까지 남들이 보기에 부족한 것이 없었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심각한 허무주의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느 날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한 그녀는 세상을 등지려 시도했지만 그녀를 발견한 이웃 덕에 목숨을 건지게 된다. 이 일로 인해 그녀는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의사는 그녀가 한 시도 때문에 심장에 이상이 생겨 앞으로 일주일밖에 살아갈 시간이 남지 않았다고 전한다. 몇십 년 동안 자신의 분야에서 성동 가도를 달리다 원하는 사람과의 사랑을 끝내 이루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마리아, 교통사고로 여자 친구를 잃게 된 후 실어증에 걸려버린 에드워드까지 그녀는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어느 날 베로니카는 말다툼 끝에 마리아의 뺨을 때리게 된다. 그녀가 정상적인 사회 궤도 안에 있었더라면 하지 않았을 일이다. 분명히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어쩐 일인지 삶의 의지가 꿈틀거리게 된다. 이후 그녀는 우연히 병원에 있던 피아노를 치게 된다. 그녀의 유일한 관객은 실어증에 걸린 청년 에드워드 한 명뿐이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녀는 에드워드 앞에서 홀린 듯이 연주를 한 그날부터  본격적인 삶에 대한 치솟는 욕구를 느끼게 된다. 사실 그녀의 원래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부모님의 제의에 시작한 피아노였지만 곧 그것은 그녀에게 꿈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최종적으로는 그녀의 꿈을 막아버렸고, 그때부터 그녀는 누구나 예상한 뻔한 삶, 평범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에드워드에게도 비슷한 사정이 있었다. 그의 꿈은 화가였고 그의 외교관 아버지는 아들의 꿈을 부끄럽게 여겨 그를 막아섰다. 그들은 공통점을 지닌 서로에게 점점 의지하고 마음을 내어주기 시작했다. 피아노 사건 이후 베로니카는 의사에게 한시도 빠짐없이 깨어있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변화된 베로니카의 모습을 보며 그녀를 통해 삶에 대한 의지를 다시금 깨우치게 되는 마리아는 새로운 인생을 위해 병원을 나가는 일도 발생한다. 얼마 후 베로니카는 에드워드와 함께 병원을 탈출해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들을 마음껏 펼치며 사소하지만 망설여왔던 일들을 함께 해나가며 열정적으로 사랑을 키워간다. 의사가 말했던 시간은 일주일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그녀는 그 후에도 여전히 살아있다.

삶이 끝났다고 생각하기 전 깨달아야 할 것

영화의 원작인 책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그 자신이 3번이나 병동 경험이 있던 사람이기에 작품에 굉장히 섬세한 묘사를 녹여낸다. 또한 세상의 반골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심리에 대해 심도 있는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주인공 베로니카는 스스로 세상을 등지려 하기 전 생각한다. 평범하게 결혼을 하고, 부부 사이가 지겨워질 때쯤이면 아이를 갖고, 그러면서 뻔하게 늙어가고, 일을 더 커지게 만들지 않기 위해 때로는 남편이 한눈을 파는 것도 눈감아주며 남들이 그러하듯 뻔하게 살다 갈 것이라고 말이다. 딱히 절망적인 일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꼭 살아가야 되는 이유도 없고 꿈도 없이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그녀에게는 고역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녀의 삶은 다시 시작되었다. 병원이라는 곳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명확한 결론이 나 버린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그곳의 일원이 되어 정상이라는 기준을 포기했을 때 그녀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모든 감정과  행동에서 완벽히 자유할 수 있었으며 자신이 진정 원하는 피아노를 다시 치며 끓어오르는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녀는 에드워드와의 사랑을 통해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고, 누구의 기준도 신경 쓰지 않는 진짜 가슴 뜨거운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러한 것들은 천국에 가서나 할 수 있는 초현실적인 것들이 아니다. 그저 정상의 범위에서 평범하게 살기 위해, 남들 눈에 이상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평생에 걸쳐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굴레만 벗어던지면 언제라도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세상을 뜨기 전 단 며칠의 시간만이 남게 된다면 우리는 그동안 로망으로 삼았던 일을 하거나 원래라면 하지 못했을 모든 것을 할 것이다.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참지 않고 표현하기도 하고, 그동안 상상도 해 보지 못했던 곳에 가서 무언가에 홀린 듯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회의 규범에 맞출 필요가 없는 완전히 자유한 나 자체일 때 나오는 행동들이다. 영화를 보며 하루하루를 마지막처럼 살아가는 일을 왜 살아갈 시간이 많이 주어졌다고 생각했을 때는 하지 않고 삶을 무력감의 연속이라고만 여겼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한없이 어두워만 지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럴 때 그만 삶을 끝내버리고 싶다는 말을 으레 하곤 한다. 하지만 그 끝에 도달해본 사람은 알고 있다. 그것은 결코 삶이 끝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이루고 싶었던 순수한 열망들을 마음껏 표출해 내지 못해서 생기는 욕구불만이었다는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의 인생을 망쳐볼 수도, 한계점까지 밀어붙여 볼 수도 있다.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소극적으로만 임했던 사랑에 계산기 없이 열정만 갖고 자신을 내던져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들이 결국은 후회만 남긴다고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자신의 마음만 따라가다 보면 후회하는 인생만이 남을 것이라는 것은 결국 실체 없는 두려움일 수 있다. 누구에게나 딱 한 번만 주어지는 인생이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는 누가 봤을 때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정상의 궤도에 있기 위해서보다는 나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며 사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생각을 하게 한 영화였다. 영화에는 소소한 반전도 있기에 삶의 목표와 의지를 잃어버린 위기를 맞은 사람들이 꼭 한 번 보면 좋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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