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되고 싶었던 화가 에이나르
영화 <대니쉬 걸>은 세계 최초로 성전환을 시도한 화가에 관한 이야기다. 배경은 1926년 덴마크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에이나르는 섬세하고 예민한 감성을 지닌 실력 있는 풍경화 화가이다. 그는 털털하고 대범한 성격을 가진 인물화 화가인 아내 게르다와 함께 살아간다. 둘은 서로의 둘도 없는 동반자이자 서로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환상의 짝이다. 평범한 나날들을 보내던 어느 날, 게르다의 그림 모델이었던 친구 울라가 올 수 없게 되자, 게르다는 에이나르에게 여장을 하고 대신 모델이 되어 줄 것을 부탁한다. 별생각 없이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 사건은 에이나르에게 있어 큰 전환점이 된다. 처음으로 둘러본 여성의 액세서리와 드레스를 입고 모델로 서 있는 동안 에이나르는 묘한 감정 속에 휩싸인다. 마치 꽁꽁 숨겨놓았던 진짜 자신과 마주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이 사건 이후 에이나르는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여성성에 눈을 뜨게 된다. 얼마 후, 게르다는 에이나르가 밤에 여성용 속옷을 입은 모습을 보게 되고, 그때까지만 해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던 게르다는 이에 영감이라도 받은 듯 본격적으로 그에게 화장을 시켜주고 여자 옷을 입히며 본격적인 여장을 도와준다. 급기야 게르다는 에이나르를 여장시킨 채로 무도회에 데려간다. 에이나르의 여성 자아인 '릴리'는 이 무도회에서 헨릭 산달이라는 남자의 눈에 들게 되고, 릴리의 모습으로 그와 입맞춤을 하게 된다. 게르다는 그것을 목격하게 되고 에이나르의 지금까지의 행동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날부터 좋기만 했던 에이르와 게르다의 사이에는 이제껏 없었던 혼란스러운 기류가 감돌게 된다. 에이나르는 릴리의 자아에 더더욱 빠져가는 모습을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게르다는 릴리의 초상화로 점점 호평을 받게 되어 파리에서 전시회를 열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에이나르는 자신의 여성 자아 릴리가 세상의 인정을 받는다는 생각에 점점 더 자신감을 얻게 되고 에이나르로써의 자아는 완전히 없애버리고 싶어 하는 지경에 이른다. 게르다는 점점 사라지는 에이나르의 모습을 보며 혼란과 슬픔에 빠져간다. 하지만 에이나르의 게르다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기에 그는 병원을 찾기도 한다. 의사들은 에이나르에게 호르몬 이상과 조현병 등의 병명을 붙였고 에이나르는 정신 병원에 갇힐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에이나르는 우연찮은 기회로 커트라는 이름의 박사를 만나 또 한 번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는 성전환 수술을 연구하고 있는 의사로 에이나르에게 수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고, 에이나르는 망설임 없이 수술을 결정하고 홀로 독일 드레스덴으로 향한다. 수술은 총 2회였다. 1회 차 수술을 끝낸 후 게르다는 에이나르를 보러 독일로 간다. 큰 수술의 고통에 힘겨워하고 있는 에이나르를 게르다는 릴리라고 불러 주며 정성껏 보살핀다. 게르다의 간호로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한 릴리는 덴마크로 돌아와 백화점 화장품 코너의 직원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간다. 게르다는 그런 그의 곁을 계속해서 지켜주며 이제는 남편이 아닌 룸메이트로써의 그녀와 생활하게 된다. 그러던 중 릴리는 남은 수술을 하기 위해 독일에 가려는 의지를 보인다. 게르다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을 그녀의 몸 상태를 걱정했지만 릴리의 강렬한 의지를 꺾지 못하고 결국 둘은 함께 독일행 기차에 오르게 된다. 억겁 같은 밤이 지나고 릴리는 수술대에 오른다. 안타깝게도 수술은 예후가 좋지 않았고 릴리는 밤낮을 고열에 시달리며 고통받는다. 그러한 고통에도 릴리는 마침대 자신이 드디어 여자가 되었다며 지난밤 꿈 자신이 아기였을 때 어머니가 자신을 향해 릴리라고 이름을 불러 주었다고 조용히 기뻐한다. 게르다에게 그런 이야기를 속삭인 후 릴리는 잠들듯이 숨을 거둔다. 게르다는 이후 릴리의 고향이었던 바일레를 찾아가 그녀를 기린다. 릴리의 자유로운 영혼을 보여주듯 게르다의 목에 둘렀던 스카프가 하늘에 바람에 날아가고, 게르다는 날아가는 스카프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스카프가 날아간 하늘을 비추며 영화는 끝이 난다.
무엇도 막을 수 없었던 헌신적 사랑이야기
영화 <대니쉬 걸>은 표면적으로는 최초의 성전환자 에이나르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게르다를 주인공으로 보고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을 높이 사는 의견도 많이 존재한다. 작중 게르다는 에이나르가 한창 방황하던 중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나며 그녀에게 다소 차가운 모습을 보일 때마저 그를 향한 애정의 끈을 놓지 않고 릴리가 된 남편의 모습까지도 끝까지 사랑한다. 에이나르는 릴리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그녀 몰래 다른 남자를 만나러 가는가 하면 수술 후 자신을 살뜰히 챙기는 게르다에게 간섭 말고 너의 인생을 찾으라는 듯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게르다는 끝까지 그런 그를 버리지 않고 릴리로써의 자아를 온전히 인정해주려 노력한다. 그런 면에서 에이나르는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여성으로서의 삶을 마음껏 누리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가족의 사랑보다도 더 맹목적인 사랑을 받았던 한 인간으로서의 행운은 타고난 셈이다. 영화에서는 그의 여자가 되고 싶은 열망에 초점을 맞추지만, 한편 자신만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게르다에게 에이나르는 조금은 이기적이고 극단적인 측면을 띄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1920년대, 아직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엄청난 편견이 있었을 시대에도 끝까지 남편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준 게르다의 아름다운 인류애와 특별했던 그들의 사랑 이야기에 집중하며 영화를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