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인 떠돌이 생활을 하는 주인공 미소
4년 차 청소부로 일하고 있는 미소는 쌀을 살 돈도 없을 정도로 궁핍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녀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담배와 위스키 한 잔이었다. 추운 겨울 난방도 되지 않아 옷을 껴입어야만 하고 벌레가 나오는 집에 사는 미소였지만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한솔이었다. 그는 웹툰 작가 지망생으로 생계를 위해 공장 기숙사에서 지내며 일을 하고 있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미소는 자신이 좋아하는 최소한의 것들만으로 만족하며 씩씩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살던 집 월세가 올라가게 되고 미소는 가계부 정리를 하다 술, 담배, 집값 중 과감하게 집을 빼버린다. 떠돌이 신세가 된 그녀는 대학 시절 밴드로 활동하던 친구들을 한 명씩 찾아가기 시작한다. 첫 번째 친구는 번듯한 회사원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미소의 하루만 재워 줄 수 있냐는 부탁을 거절한다. 두 번째 친구는 시부모님과 남편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굉장히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었음에도 미소 덕분에 오랜만에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게 됐음을 순수하게 즐거워했다. 미소는 다음 날 따뜻한 아침밥을 차려놓고 떠난다. 세 번째 친구는 얼마 전 이혼을 하고 폐인처럼 사는 남자인 친구였다. 미소는 이 친구에게도 따뜻한 집밥과 청소까지 제공하고 떠난다. 이 과정에서 남자 친구 한솔은 자신이 웹툰 작가였다면 미소가 성별이 남자인 친구 집에서 신세 지지 않았을 거라며 형편을 자책하지만 미소는 한솔과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형편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다음 찾아간 집은 드럼을 치던 오빠네 집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나이가 먹도록 결혼도 하지 못하고 홀로 늙어 가는 아들을 어떻게든 결혼시키려 미소에게 과한 친절을 베풀었다. 급기야 그들은 현관문을 잠그며 그녀를 잡아두려 했고 미소는 그래도 고맙다는 쪽지와 함께 그 집을 탈출한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좋은 직장을 가진 남편을 만나 부자로 살고 있는 친구네 집이었다. 미소는 이 친구네 집에 얹혀살며 오랜만의 여유를 즐기게 된다. 가사도우미로 버는 돈을 저축도 하고 사랑하는 담배와 위스키를 마음껏 누리기도 한다. 하지만 미소가 친구의 밴드 시절 얘기를 한 어느 날의 저녁 식사 이후 어쩐 일인지 친구와 남편 사이는 냉각된다. 친구는 그 후 미소에게 집이 없을 정도로 돈이 없는데 담배와 위스키라는 취미를 가진 것이 한심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수표를 주며 빨리 집을 구해 나가라고 말한다. 미소는 필요 없다며 그 돈을 받지 않고 또다시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남자 친구 한솔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발령받아 2년 동안 떠난다고 한다. 미소는 배신자라며 슬퍼하지만 한솔은 어딘가에 지원해서 뽑혀 본 것이 처음이라며 그곳에 가고 싶어 한다. 가사도우미를 하는 집으로 갔더니 고용주인 민지가 임신을 했는데 남편이 누군지 모른다며, 이 집도 반납해야 하므로 미소도 해고라고 말하며 운다. 미소는 그런 그녀에게 덤덤한 위로를 전하며 하고 싶은 일을 잘해나갔으면 좋겠다는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넨다. 얼마 무 한솔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고 또다시 집 없는 신세가 된 미소지만 그녀는 여전히 담배와 위스키로 행복감을 채우며 텐트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낭만을 포기하고 현실을 택해야 옳은 것은 아니다
영화 속 미소는 집은 없지만 자신만의 소신과 취향만큼은 확실한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장의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를 굉장히 심각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로 여긴다. 하지만 미소는 자신의 모습을 어디서든 숨기지 않는다. 그녀는 사회의 관습에 얽매여 원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어 보인다. 물론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비슷한 제도 안에서 비슷한 교육을 받아 온 우리가 미소처럼 산다는 것은 어렵다. 미소가 마지막으로 머문 부자 친구 정미는 그녀에게 대놓고 낭만을 좇아 사는 것이 한심하다고 말할 만큼 말이다. 관객들 중에는 정미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수학 공식처럼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영화를 시청하는 것,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것 등을 한심하냐 아니냐의 문제로 산정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분명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 건설적이어야지만 의미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의지의 권리를 통념적인 것에 맞추어야 한다는 의무는 어디에도 없다. 모든 사람의 삶의 방향이 미래에 치우쳐 있어야만 하며 안정적인 내일을 위해 당장의 즐거움과 낭만을 포기해야 한다는 법은 아무도 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그것이 정답인 것처럼 그렇게 했을 때만 비로소 안정감을 느끼곤 한다. 반면 미소는 고정관념 따위는 살면서 가져본 적도 없는 듯하고, 자신만의 작은 공간과 생활 반경 안에서도 더없는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다. 실제로 그녀의 작중 이름도 'smile'이 아닌 'microhabitat'에서 따온 만큼 영화 제작자들의 의도 역시 꿋꿋하게 자신만의 세계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미소에게 정당성을 부여해 주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미소가 자신의 삶을 마음이 가는 대로 꾸려가는 모습들은 좋았으나, 그 과정에서 남의 집을 전전하려고 생각한 것은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다. 물론 영화는 집, 가족, 좋은 직장까지 가진 친구들 역시 저마다 고충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런 장치를 사용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또 미소가 부자인 친구 남편과 함께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장면도 조금 의아했다. 미소가 그만큼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기본적인 남의 마음에 대한 배려 정도는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점이 들었다. 그러나 파격적인 설정을 통해 우리의 고정관념에 정곡을 찔러 넣는 영화의 시도 자체는 굉장히 신선하고 좋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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