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부모가 되는 과정

by 무루룽 2022. 11. 12.
반응형

등장인물과 영화 줄거리

명문대를 나와 일류 회사를 다니고 있는 료타는 성공한 건축가이자 비즈니스맨이다. 사회에서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집에 오면 상냥하고 친절한 아내 미도리와 자신을 빼닮은 귀여운 아들 케이타가 기다린다. 누가 봐도 안정적이고 이상적인 가정인 료타의 집에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난다. 사건은 산부인과에서 온 전화 한 통으로부터 시작된다. 내용인즉슨 6년 동안 키워 온 아들 케이타가 병원에서 뒤바뀐 아이라는 것, 즉 료타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충격적인 소식에 아내 미도리는 어쩔 바를 모르지만, 료타는 한 편 늘 자신만큼 뛰어나지 못했던 케이타가 역시 자신을 닮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안도를 하기도 한다. 이상이 높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의 료타에게 있어 마냥 착하고 유약한 케이타는 어딘가 그를 만족시키지 못해 왔기 때문이었다. 이후 뒤바뀐 아이의 부모와 료타 가족은 병원의 주선을 통해 만나게 된다. 료타의 진짜 아들인 류세이를 키우고 있는 현재의 아버지의 이름은 유다이로, 전자상점을 하는 자영업자였다. 그는 회사 일 때문에 가족과는 거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료타와는 반대로 어딘가 남루하고 풍족하지 못하지만 시끌시끌하고 사람 냄새나는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사람이었다. 서로 친아들의 존재를 안 이상, 양쪽의 부모는 지금이라도 아이를 바꿀지 말지 결정해야 했다. 결론은 친아들은 아닐지언정 이때까지 키워온 아이를 한순간에 바꾸는 것은 현재로서는 말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대신 그들은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지며 천천히 친해지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두 가정은 매우 상반된 모습으로 그려진다. 다소 딱딱하고 아버지로서의 권위, 통념적인 예절 같은 것들을 중요시하는 료타는 아버지란 어느 정도 그러한 모습이 필요하며,  경제적인 부분을 충족시켜 줌으로써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유다이는 어른으로써는 어딘가 부족해 보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장난기 많고 편안한 친구의 모습으로 다가가며, 아버지란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다고 말이다. 자신의 기준과 입장이 중요한 사람이었던 료타는 자신의 친아들 류세이는 커갈수록 자신을 닮아가고, 반대로 케이타는 유다이 쪽을 닮아갈 거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의 모습을 닮았을 류세이를 데려와 키우는 쪽으로 마음을 정한다. 그렇게 류세이는 료타의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집안 분위기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던 류세이는 급기야 가출을 하기에 이르고, 이 사건으로 인해 료타는 아이를 대하는 자신의 방식을 반성해보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기준 안에서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봐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깨달은 것이다. 이후 돌아온 류세이에게 료타는 권위적인 모습을 버리고 함께 장난을 쳐주기도 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류세이는 료타네 집에서 점점 더 잘 적응해간다. 그러던 어느 날, 료타는 류세이를 찍어 놓았던 사진기를 들여다보다 의외의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케이타가 찍어 놓은 자신의 사진들이었다. 일하는 모습, 일하다 지쳐 자는 모습 등 자신이 모르는 사이 케이타는 아버지 료타의 모습을 찍어 놓았던 것이다. 료타는 사진기를 보며 눈물을 쏟는다. 이후 그는 케이타를 찾아간다. 유다이의 옆에 앉아 물건 고치는 것을 구경하고 있던 케이타는 료타를 보자 그동안 토라진 감정을 표현하며 도망가 버리고, 료타는 케이타를 쫓아간다. 케이타는 원망스러운 마음에 료타를 향해  '아빠는 아빠 따위가 아니야'라고 말하지만, 료타의 진심 어린 말에 결국 두 부자는 평행선의 끝에서 만나 껴안는다. 이후 케이타와 료타는 유다이의 집으로 함께 들어가며 열린 결말로 영화는 끝이 난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진짜 아버지의 모습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영향을 받는다. 부모는 선택할 수 없기에 어떤 아버지 밑에서 어떤 영향을 받으며 어떤 감정들을 느끼며 살아가는가는 불가항력의 영역이다. 영화를 보면 케이타에게 다소 딱딱한 모습을 보여주는 료타는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의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 많았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학습했던 아버지의 모습으로 아이를 대했던 것이었다. 유다이는 그와 반대로 사소한 것 하나까지 함께해 주었던 다정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에 그 역시도 자신의 아이들에게 친구 같은 모습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에 보고 배운 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을 자신의 가정에 보여주었을 뿐이다. 료타는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경제적인 풍족 부분에 최선을 다했으며 유다이는 그만의 철학대로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쪽으로 최선을 다했다. 어떤 것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료타가 유다이에게서 하나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이었다. 영화의 초반부터 료타는 6살밖에 되지 않은 케이타에게도 능력이 부족하면 내심 불만족스러워하는 태도를 보인다. 중 후반부로 가서도 두 아이 중 누구를 키울지 결정하는 장면에 있어 아이들의 감정을 생각하기보다는 커가면서 자신을 닮아갈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 '자신의 내면'에 더 집중되어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료타의 마음은 말로 하지 않아도 케이타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왔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란 아이를 평가해야 할 존재가 아니다. 험난한 세상에서 무조건적으로 아이의 편이 되어주고, 있는 그대로의 아이 모습을 사랑해줄 때 아이는 사랑받은 건강한 인격체로 자라나게 된다. 다행히 그런 면에서 료타는 유다이 가족과의 만남이라는 계기를 통해 자신의 부족한 점을 돌아보게 되고, 케이타와 진정으로 통할 수 있게 된다. 영화 후반부의 료타와 케이타의 포옹 장면에서 관객들은 료타가 생물학적인 부분을 뛰어넘어 케이타의 '진정한 아버지'로 거듭나게 됨을 느낀다. 영화는 여러 장면들을 통해 아버지라는 존재도 아이들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이룸을 상기시켜준다. 또한 진정한 가족으로써의 소통, 부모의 의미에 대해 한 번 더 우리를 생각하게 한다. 

반응형

댓글